본문 바로가기

미술치료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 Fairbairn과 Winnicott을 중심으로

 

Klein의 이론이 점점 확장되고, 자아심리학이 정교화되고 있을 때, 영국에서는 Freud의 고전적인 동기 이론과는 다른 입장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Fairbairn(1899-1964)은 분열적(schizoid)이라고 진단적으로 기술된 성인 내담자들의 임상적인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도출하였다(1952). 그는 초기 대상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Freud와 Klein과는 다르게, 심리 구조 형성에 있어 추동이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Fairbairn은 고전적인 동기 이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동기 이론을 제시하였는데, 그는 리비도가 쾌락을 추구하기보다는 대상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Fairbairn은 자아의 모든 부분들이 항상 대상들과 연결되어 있고, 모든 정신병리를 내적 대상(internal object)으로 표현되는 과거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는 자아의 노력으로 이해했다. 그에 의하면, 외부 대상들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에 보상적인 내적 대상들(compensatory internal objects)이 발생하고, 이러한 내적 대상들의 증가는 자아의 분열(splitting)을 가져오고 결국 원래의 자아는 파편화(fragmentation)될 수 있다. 정신병리는 파편화된 자아 부분들이 현실의 대상관계를 포기하면서까지 내적 대상들에 집착하는데서 비롯된다. Fairbairn의 이론을 수정하고 확장시키는데 관심을 기울였던 Guntrip은 “퇴행한 자아(regressed ego)”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Fairbairn의 이론을 수정하였는데, 그는 모든 정신병리의 근원을 자아가 모든 대상들로부터 철수하는 것에서 찾았다.
Winnicott(1896-1971)은 Klein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나 Klein보다는 환경과 모성적 역할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그는 엄마-유아 관계를 언급하면서, 엄마와 유아의 이자 관계 그 자체가 각자가 기여한 부분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아이를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헌신하는 것을 “일차적인 모성 몰입(primary maternal preoccupation)”이라고 불렀고, 또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가 제공하는 환경을 통해 아이가 창의적이고 건강한 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충분히 좋은 심리사회적 환경은 아이가 유아적 의존에서 독립으로 발달할 수 있게 돕고, 자신이 전능하다는 생각으로부터 보다 현실적인 지각으로 전환하게 해준다.
Winnnicott의 참자기(true self)와 거짓자기(false self)의 개념은, 유아가 태어나면서부터 강력하게 대상과 관련되고, 아무리 헌신적인 좋은 엄마라도 불가피하게 아이를 실망시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반영한다(Winnicott, 1965). 이러한 결과로 유아는 엄마의 소망에 순응하게 되고, 참자기의 잠재력은 희생당할 수 있다. 이상적으로, 참자기는 침범받지 않는 환경 안에서 존재의 연속성을 경험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과 속도에 따라 개인적인 심리적 실재(psychic reality)와 신체도식을 획득하는 타고난 잠재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자발적인 충동과 표현을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참자기는 살아있음(aliveness)과 관련된 경험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Winnicott(1965)는 또한 유아가 자신의 독립적인 기능을 발달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간 대상(transitional object) 개념을 소개하였다. 예를 들어, 아이가 좋아하는 담요는 엄마와의 즐거운 상호작용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를 달래주는 기능을 하는데, 이러한 중간 대상은 “나와 나 아닌(me and not-me)” 세계의 연결을 도와주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중간 대상이 아이의 환상에 의해 창조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객관적인 현실적 대상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한다. 중간 현상이 가지는 중요성은 대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 자신이 전능하다는 환상으로부터 객관적인 현실 인식으로 발달해가는 중간 지점이라는 데에 있다. 유아는 점점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인들이 독립된 존재임을 객관적으로 지각하게 된다.
Greenberg와 Mitchell(1983)은, Winnicott이 추동 모델과 관계 모델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시도하였으며, 통합되고 경험적인 진정한 자기의 발달 과정을 연구하였다고 보았다. Winnicott은 대상의 성질이 초기의 모성적 돌봄에 따라 형성된다고 주장하였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대상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즉, 아이는 대상이 버티어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이 되고, 자신을 반영(mirroring)해주며, 전능감(omnipotence)을 현실화시켜주고, 대상 사용(object usage)의 기회를 제공하며, 중간 경험(transitional experience)의 모호함을 감내하게 해주고, 위로해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모성적 기능은 유아가 타인에 대해 관심(concern)을 갖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에 필수적이다. 우선 엄마는 유아가 흥분상태에서 가하는 공격을 견디고 버티어줄 수 있으며, 유아가 이러한 자신의 공격성을 복구하고 엄마를 위로하고자 할 때 이것을 받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공격성과 관련된 복구가 가능하면 아이는 파괴적인 것과 관련된 죄책감을 극복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
그밖에도 영국 학파는 다양한 대상관계 이론들을 전개하고 있다. Balint(1968)는 외디푸스기 이전의 이자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엄마와의 원초적 사랑(primary love)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주 심한 심리장애나 심리신체적 질병을 동반하는 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성격의 기본적인 결함(basic fault)과 접촉하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치료적 퇴행을 허용해야하고 전외디푸스기 수준에서 분석해야한다고 역설하였다.
Bowlby(1969, 1973, 1980)는 동물 행동학에 기초하여 애착(attachment)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그는 인간의 애착 경향이 생물학적으로 기초한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반응 체계이고, 이것이 추동 만족과 같은 동기만큼 중요하다고 보았다. 유아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구조화된 반응 체계, 즉, 빨기(sucking), 울기(crying), 웃기(smiling), 매달리기(clinging), 따라다니기(following 혹은 orienting)를 가지고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반응 체계는 엄마의 반응 행동을 활성화시키는데, 엄마의 반응 행동은 유아 체계에 피드백을 주며, 애착을 매개하는 특정 행동을 활성화한다. 유아의 본능적인 반응체계들이 활성화될 때 엄마가 가용하지 않으면, 분리불안, 반항행동, 그리고 슬픔과 애도가 나타난다. 엄마에 대한 애착을 일차적인 추동으로 보는 Bowlby의 가설은 일종의 대상관계 이론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행동적이고 실제적인 대인관계 패턴을 강조하였고, 심리내적 구조에 관한 개념화는 하지 않았다(Kernberg, 1976).

저자: 이 용 승
제목: 대상관계 이론의 역사적 개관(2004)
출처: 성격장애 내담자에 대한 대상관계적 접근과 상담실제.
한국심리학회 산하 한국상담심리학회 2004년 동계학술연수(2월 12일-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