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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

경험적 가족치료의 주요인물

1. 배경

 

가족치료에 대한 경험적 접근은 정신 분석이 퇴조하기 시작하고 유럽의 실존 주의 사조가 들어오고 게슈탈트 치료가 인정받기 시작했던 1960년대 개인심리의 실존적/인본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실존 주의자들은 정신 분석의 결정론 대신에 개별적 가치와 개인적 목표와 같은 개별성의 본질을 강조하였다. 또한 경험 집단, 감수성 훈련과 인간잠재력의 성취를 강조 하며 초점을 여기-지금경험하는 것에 두었다. 경험적 가족치료는 현상학의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이는 사실 자체보다는 개인의 주관적 체험을 더 중시하는 관점을 말한다. 엄밀히 말해 시간이란 주관적으로 체험되는 의식의 흐름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만이 실존적인 시간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경험적 가족 치료는 치료 기법에 있어서도 게슈탈트와 참만남 집단에서 역할 놀이와 정서적 직면 기법과 조각하기, 가족 그리기 같은 표현적 기법들은 예술과 심리극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가족에게 통찰이나 설명을 해주기보다는 특유한 갈등과 행동양식에 맞는 경험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제공하는 경험이란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열어 보일 수 있는 기회, 표현의 자유, 개인의 성장 등을 의미한다. 경험적 가족 치료자들은 상담 과정 속에서 경험하는 대인관계 그 자체가 성장에 주요한 자극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경험적 가족 치료는 개인의 감정을 강조했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체계와 행동을 다루는 접근으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치료자의 창의적 능력을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거시적인 치료 목표 외에는 구체적으로 제시 될 수 있는 기법이 명시되어 있지 않아 치료사에 따라 다르게 치료가 진행된다는 제함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패기 팹 (peggy pepp)이나 존 밴맨 (john banmen)과 같은 치료사들이 전통적 경험적 치료에서 진일보하여 체계적 경험치료 또는 체계적 단기 경험 치료 모델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대중화된 경험적 가족치료법은 60년대 산물로 남아있는 경향이 있지만 오늘날 정서중심부부치료 그리고 내면가족체계에 의해 다시 활발해 지고 있으며 개인의 정서적 경험에 초점을 둠과 동시에 가족 체계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2. 경험적 가족치료의 주요인물

 

경험적 가족치료의 주요인물로는 Whitaker Satir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치료과정을 통한 내담자의 체험을 중시하고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관여가 치료적 변화를 촉진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방법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Whitaker는 개인적인 만남을 강조하며 치료자가 자신을 이용하여 가족성원에게 다가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에 Satir는 치료란 무엇보다 성장 과정의 체험연습이라고 주장하며 가족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성장모델을 강조했다.

 

1) C. Whitaker

 

Carl Whitaker는 산부인과 수련을 마친 뒤 2차 대전 때 정신과 공동치료팀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정신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에모리 (emory) 대학 정신의학과의 학과장으로 있으면서 보다 정신분석적 성향을 더 강조하라는 압력이 점차 커지자 사임하고 Thoms, Malone, John Warkentin, Richard Felder가 포함된 의료팀과 함께 애틀란타 정신병원을 설립하였다. 경험적 가족치료는 이 연합체에서 탄생되었으며 많은 논문들을 발표했다.

 

Carl Whitaker는 가족의 무책임과 위장을 들춰내고 가족 구성원을 가족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본연의 자신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치료사에게도 특정 모델을 숭상하고 본뜨기보다는 자신을 적극 활용하여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분석과 해석을 활용하여 내담자에게 통찰을 주고 직관적인 접근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정신분열증을 성장과정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이 나름대로 만들어낸 창조적인 해결책이라고 규정하고 치료과정 중에 환자와 치료자가 서로 몰입하는 경험을 통하여 양쪽 모두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하던 중, 질병의 원인 중에 가족이 중심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초기입장을 확장시켜 내적 심리 딜레마와 대인관계의 딜레마를 중심으로 정신분열증을 개념화하고 가족을 치료에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하여 Whitaker상징적 경험주의 가족치료가 탄생되었다.

 

이후 65년에 위스콘신 대학에 근무하고 메디슨에서 개업 상담을 시작했으며 95년 사망했다.

 

 

 

2) V. Satir

 

 satir (1916-1988)Wisconsin주 한 농장에서 다섯 자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시골 농장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자아 존중감의 개념과 성장 중심의 사티어 모델의 치료적 신념과 방법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밀워키 주 사범 대학 (Milwaukee State Teacher's College- University of Wisconsin)에 입학하고 ALH (Abraham Lincoln House)라는 흑인을 위한 복지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과 인간자체에 대한 존중감을 갖게 되었다. 졸업한 뒤 6년간 초등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의 문제 뒤에는 문제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연구를 더하고자 시카고 (The University of Chicago) 대학원에 입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48년 졸업 후 1955년까지 Calmest Gyros 박사와 함께 일리노이 주 정신 의학 기관 (Illinoise Psychiatric Institute)에서 일을 하면서 가족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깨달았으며, 그 후 Don Jackson, Jules Riskin과 함께 MRI (The Mental Health Research Institute)를 설립하였다. 이곳에서 가족치료훈련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지도하였다.

 

1964 Big Sur, California에 있는 Esalen Institute에서 성장 기법 개발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잘되려는 잠재력과 생명력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적절하게 양육된다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나무의 속성에 비유해 종자 모델 (seed model)이라고 불렀다. 또한 개인의 심리 내적 과정의 변화를 통해 가족과의 원만하고 건강한 의사 소통 교류가 가능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고 보아 성장 모델이라고도 한다.

 

Virginia Satir 는 인본주의적 인간관과 철학을 기초로 자신의 치료이념과 가치체계를 발전시켰다. V.Satir의 치료 접근방식은 행동이론, 학습이론, 체계이론, 의사소통 이론을 기본으로 하는 자아존중감, 자아가치와 신념, 가족규칙, 의사소통유형에 주요 초점을 두고 있다. V.Satir는 가족들이 서로 자신들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며, 어떻게 상호간에 반응하고, 어떻게 자신만의 고유한 의사소통과 행동방식의 패턴을 형성하는지를 주목하였다.

경험적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아존중감의 증진과 자기가치를 느끼며 개인적으로 자기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가족들 간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상호존중감, 신뢰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체험과 교육을 중요시하였다.  V.Satir는 가족들이 상호간의 역동성과 솔직한 감정의 표현, 그리고 정직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펄스 (Fritz Perls) 게슈탈트기법, 가족조각, 심리 역할극, 비유, 유머, 신체 접촉등의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인간적인 따뜻함과 온정, 신뢰감으로 가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치료자였다.

70년대 후반에는 그녀의 영향력이 많이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88년 그녀의 사망 후 동료와 제자들이 그녀의 이혼과 활동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또한 개인치료에 활용되면서 단기에 치료적 효과를 거두려는 단기 치료 모델로 발전되어 최근에는 체계적 단기 경험치료라 불리기도 한다.

 

3) W.Kempler

 

Walter Kempler 1948년 텍사스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59년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정신의학 수련의 과정을 마쳤다. 그는 펄스 (Perls)  로부터 받은 게슈탈트 치료 훈련경험을 가족치료에 접목하려고 노력한 치료자였으며 게슈탈트 치료의 다양한 기법을 가족치료에 도입하였다.

그는 치료자로 하여금 가족과 평등하게 참여자로서, 가족들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려 하였다. 가족성원에게 참여와 자기개방을 기본적인 행동원칙으로 제시하며 가족의 게슈탈트를 회복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를 강조하였다. 그의 치료는 구체적으로 인식의 확장, 개인 책임감 수용, 직접적이고 살아있는 삶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식된 개개인들의 통합화에 초점을 두었다.

 

4) D.Kantor

 

David Kantor는 심리극을 도입했으며 극장으로서의 가족이라는 상징적 개념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레어 (Lehr)와 함께 경험적 가족치료접근에 영향을 주는 가족과정의 이론을 개발하였다.이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인간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은유로서 공간을 사용하였다. 1965년에 와서는 거리의 규제(distance regulation)가 가족의 체계를 이해하는 중심적 문제일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그가 말하는 공간과 거리는 사람들이 대인체계를 구별하고 도식화하며, 이해 하기 위한 기본적인 은유로 연구를 통해 가족 내의 거리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5) Bunny Duhl & Fred Duhl

 

boston family institute의 초기 지도자였던 바니 덜(Bunny Duhl) 과 프레드 덜 (Fred Duhl)은 치료과정에서 비언어적 의사소통인 조각기법, 인형극 등 많은 표현기법을 경험적 가족 치료에 활용하였다. 이들의 접근을 통합적 가족 치료라 한다. 

 

Carl Whitaker는 산부인과 수련을 마친 뒤 2차 대전 때 정신과 공동치료팀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정신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에모리 (emory) 대학 정신의학과의 학과장으로 있으면서 보다 정신분석적 성향을 더 강조하라는 압력이 점차 커지자 사임하고 Thoms, Malone, John Warkentin, Richard Felder가 포함된 의료팀과 함께 애틀란타 정신병원을 설립하였다. 경험적 가족치료는 이 연합체에서 탄생되었으며 많은 논문들을 발표했다.

 

Carl Whitaker는 가족의 무책임과 위장을 들춰내고 가족 구성원을 가족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본연의 자신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치료사에게도 특정 모델을 숭상하고 본뜨기보다는 자신을 적극 활용하여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분석과 해석을 활용하여 내담자에게 통찰을 주고 직관적인 접근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정신분열증을 성장과정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이 나름대로 만들어낸 창조적인 해결책이라고 규정하고 치료과정 중에 환자와 치료자가 서로 몰입하는 경험을 통하여 양쪽 모두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하던 중, 질병의 원인 중에 가족이 중심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초기입장을 확장시켜 내적 심리 딜레마와 대인관계의 딜레마를 중심으로 정신분열증을 개념화하고 가족을 치료에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하여 Whitaker상징적 경험주의 가족치료가 탄생되었다.

 

이후 65년에 위스콘신 대학에 근무하고 메디슨에서 개업 상담을 시작했으며 95년 사망했다

 

2) V. Satir

 

satir (1916-1988)Wisconsin주 한 농장에서 다섯 자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시골 농장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자아 존중감의 개념과 성장 중심의 사티어 모델의 치료적 신념과 방법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녀는 밀워키 주 사범 대학 (Milwaukee State Teacher's College- University of Wisconsin)에 입학하고 ALH (Abraham Lincoln House)라는 흑인을 위한 복지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과 인간자체에 대한 존중감을 갖게 되었다. 졸업한 뒤 6년간 초등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의 문제 뒤에는 문제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연구를 더하고자 시카고 (The University of Chicago) 대학원에 입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48년 졸업 후 1955년까지 Calmest Gyros 박사와 함께 일리노이 주 정신 의학 기관 (Illinoise Psychiatric Institute)에서 일을 하면서 가족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깨달았으며, 그 후 Don Jackson, Jules Riskin과 함께 MRI (The Mental Health Research Institute)를 설립하였다. 이곳에서 가족치료훈련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지도하였다.

 

1964 Big Sur, California에 있는 Esalen Institute에서 성장 기법 개발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잘되려는 잠재력과 생명력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적절하게 양육된다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나무의 속성에 비유해 종자 모델 (seed model)이라고 불렀다. 또한 개인의 심리 내적 과정의 변화를 통해 가족과의 원만하고 건강한 의사 소통 교류가 가능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고 보아 성장 모델이라고도 한다.

 

Virginia Satir 는 인본주의적 인간관과 철학을 기초로 자신의 치료이념과 가치체계를 발전시켰다. V.Satir의 치료 접근방식은 행동이론, 학습이론, 체계이론, 의사소통 이론을 기본으로 하는 자아존중감, 자아가치와 신념, 가족규칙, 의사소통유형에 주요 초점을 두고 있다. V.Satir는 가족들이 서로 자신들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며, 어떻게 상호간에 반응하고, 어떻게 자신만의 고유한 의사소통과 행동방식의 패턴을 형성하는지를 주목하였다.

경험적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아존중감의 증진과 자기가치를 느끼며 개인적으로 자기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가족들 간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상호존중감, 신뢰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체험과 교육을 중요시하였다.  V.Satir는 가족들이 상호간의 역동성과 솔직한 감정의 표현, 그리고 정직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펄스 (Fritz Perls) 게슈탈트기법, 가족조각, 심리 역할극, 비유, 유머, 신체 접촉등의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인간적인 따뜻함과 온정, 신뢰감으로 가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치료자였다.

70년대 후반에는 그녀의 영향력이 많이 쇠퇴하기 시작했으나 88년 그녀의 사망 후 동료와 제자들이 그녀의 이혼과 활동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또한 개인치료에 활용되면서 단기에 치료적 효과를 거두려는 단기 치료 모델로 발전되어 최근에는 체계적 단기 경험치료라 불리기도 한다.

 

3) W.Kempler

 

Walter Kempler 1948년 텍사스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59년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정신의학 수련의 과정을 마쳤다. 그는 펄스 (Perls)  로부터 받은 게슈탈트 치료 훈련경험을 가족치료에 접목하려고 노력한 치료자였으며 게슈탈트 치료의 다양한 기법을 가족치료에 도입하였다.

그는 치료자로 하여금 가족과 평등하게 참여자로서, 가족들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려 하였다. 가족성원에게 참여와 자기개방을 기본적인 행동원칙으로 제시하며 가족의 게슈탈트를 회복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를 강조하였다. 그의 치료는 구체적으로 인식의 확장, 개인 책임감 수용, 직접적이고 살아있는 삶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식된 개개인들의 통합화에 초점을 두었다.

 

4) D.Kantor

 

David Kantor는 심리극을 도입했으며 극장으로서의 가족이라는 상징적 개념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레어 (Lehr)와 함께 경험적 가족치료접근에 영향을 주는 가족과정의 이론을 개발하였다.이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공간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인간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은유로서 공간을 사용하였다. 1965년에 와서는 거리의 규제(distance regulation)가 가족의 체계를 이해하는 중심적 문제일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그가 말하는 공간과 거리는 사람들이 대인체계를 구별하고 도식화하며, 이해 하기 위한 기본적인 은유로 연구를 통해 가족 내의 거리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5) Bunny Duhl & Fred Duhl

 

boston family institute의 초기 지도자였던 바니 덜(Bunny Duhl) 과 프레드 덜 (Fred Duhl)은 치료과정에서 비언어적 의사소통인 조각기법, 인형극 등 많은 표현기법을 경험적 가족 치료에 활용하였다. 이들의 접근을 통합적 가족 치료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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