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임종에 관한 의문과 해답
김성환 (전 세브란스 병원 원목)
김성환 (전 세브란스 병원 원목)
다. 임종환자의 심리
E. Kubler-Ross의 임종환자의 5단계 심리변화 1단계 - 부정 (Denial)
2단계 - 분노 (Anger)
3단계 - 타협 (Bargaining)
4단계 - 우울 (Depression)
5단계 - 수용 (Acceptance)
(Kubler-Ross, Elisabeth. On Death and Dying.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Co. Inc., 1969; 인간의 죽음, 성염 역)
임종 환자들의 심리
암환자 심리 :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미국 정신과 의사 퀴블로 로스(Kubler-Ross)는 「인간과 죽음」이라는 책에서 임종 환자 심리를 5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1단계는 의사 진단이 잘못됐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헤매는 「부정의 시기」다.
2단계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병이 생겼느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분노의 시기」다.
3단계는 『내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만 살게 해준다면…』 식으로 생각하는 「타협의 시기」다.
4단계는 슬픔과 침묵에 젖어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않는 「우울의 시기」다.
마지막 단계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시기」다.
서울대병원 사회사업실 이영숙씨는 『각 단계가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여러가지 단계가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한다』며 『죽을 때까지 죽음을 수용하지 않고 침묵으로 저항하다 죽는 사람도 많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말기암 환자들은 무엇을 두려워 할까?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패티슨교수는
▲ 죽음이 누구도 가보지 못한 미지(未知) 세계라는데 대한 두려움
▲ 가족이나 친지, 동료,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는 두려움
▲ 가족을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진다는 두려움
▲ 자기 신체가 없어지는 데 대한 두려움
▲ 병에 따른 자기 지배능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 고통에 대한 두려움
▲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왔던가 하는 식의 주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
▲ 병들어 어린애처럼 될지 모른다는 퇴행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구분했다
가톨릭대 간호대 노유자교수는 『한국 사람은 죽어서 외로울 것과 죽은 뒤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특히 두려워 한다』고 말했다
1단계는 의사 진단이 잘못됐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헤매는 「부정의 시기」다.
2단계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병이 생겼느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분노의 시기」다.
3단계는 『내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만 살게 해준다면…』 식으로 생각하는 「타협의 시기」다.
4단계는 슬픔과 침묵에 젖어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않는 「우울의 시기」다.
마지막 단계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시기」다.
서울대병원 사회사업실 이영숙씨는 『각 단계가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여러가지 단계가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한다』며 『죽을 때까지 죽음을 수용하지 않고 침묵으로 저항하다 죽는 사람도 많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말기암 환자들은 무엇을 두려워 할까?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패티슨교수는
▲ 죽음이 누구도 가보지 못한 미지(未知) 세계라는데 대한 두려움
▲ 가족이나 친지, 동료,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는 두려움
▲ 가족을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진다는 두려움
▲ 자기 신체가 없어지는 데 대한 두려움
▲ 병에 따른 자기 지배능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 고통에 대한 두려움
▲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왔던가 하는 식의 주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
▲ 병들어 어린애처럼 될지 모른다는 퇴행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구분했다
가톨릭대 간호대 노유자교수는 『한국 사람은 죽어서 외로울 것과 죽은 뒤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특히 두려워 한다』고 말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죽음에 대한 상담
최재락 (서울신학대학교)
최재락 (서울신학대학교)
..... 엘리자벳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Ross)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죽어 가는 환자는 다섯 가지 과정을 거친다.
즉, 임종의 다섯 단계라는 것인데 ① 부정 ② 분노 ③ 타협 ④ 우울 ⑤ 수용이다. ....
* (E, Kübler-Ross, 인간의 죽음, 성염 역, 분도 출판사, 1998)
죽음의 5단계
<퀴블러 로스(E. K bler Ross, 1968)의 죽음의 5단계>
① 부정 (Denial)
임종에 가까운 대부분의 환자가 경험하는 첫 단계는 부정으로 환자들이 자신의 병이 치유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부정은 환자의 언어나 행동에 의해 나타납니다. 즉 "아니야, 난 믿을 수 없어, 나에게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어." 라는 표현을 흔히 하게 되고 환자는 진단을 잘못 내렸다는 생각과 좀더 나은 진단이 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의사와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게 되며 환자는 검사 결과가 다른 사람의 것과 바뀌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부정의 단계에서 부정을 표현하는 환자의 말과 행동의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다른 사람의 일인 것처럼 심각하지 않게 증상을 이야기한다.
- 죽음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말이 나오면 즉시 말을 돌린다.
- 공개적으로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 비의학적 치료법이나 신을 통해 치유 받고자 노력한다.
- 자신의 질병이나 증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 증상이 자연히 없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치료를 거부한다.
- 신체나 외모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 질병을 가벼운 것으로 이야기한다.
- 아직 죽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 어떤 병인지 알지만 자신은 꼭 회복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 먼저 간호사는 환자가 부정의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환자에게는 부정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다음 환자가 사실을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때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병에 대해서 좀더 현실적인 견해를 갖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만일 환자가 그의 임박한 죽음에 관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고통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입니다.
② 분노 (Anger)
환자는 "하필이면 내가"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병원 직원에게 또는 신에게까지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이 분노의 단계는 가족들이나 직원들이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분노가 수시로 바뀌고 감정을 주위 환경에 전가시키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나 간호사에게 자주 불만을 터뜨리며 의사에게도 불만이 많습니다.
▶ 환자 가까이 있는 사람(가족이나 간호사)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더 자주 환자의 분노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경우 간호사는 환자가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환자의 이러한 태도는 주위의 건강한 사람들의 건강을 질투하는 것이며 일찍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는 것입니다. 환자는 자신은 곧 죽게되고 사람들이 자기를 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고 불평을 하며 주위로부터 관심을 끌려고 노력합니다. 이때 간호사나 의료진이 환자의 분노의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사적인 일로 받아들이며 분노에 반응을 보인다면 환자는 더 심한 분노를 일으킬 것이며 환자의 적대적 행동은 심해질 것입니다. 만일 간호사나 가족이 환자로 하여금 그의 분노를 표현하도록 한다면 환자는 편안해 하고 목적 없이 간호사를 자주 부르거나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환자가 존경과 이해와 관심을 받으며 그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을 알면 그의 목청은 한결 낮아지고 성난 요구도 훨씬 줄어들게 되며 자신이 아직도 가치있는 인간, 보살핌을 받는 사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활동이 허락된 인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③ 타협 (Bargaining)
첫 단계에서는 슬픈 현실을 대면할 수가 없고, 둘째 단계에서는 사람들과 신에게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현하고 나면, 환자는 타협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불가피한 사실을 어떻게든 연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착실한 행동을 보이고 특별한 헌신을 하기로 맹세함으로써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소망은 생명을 연장하는 것, 며칠이라도 좋으니 통증이나 신체적 불편 없이 보냈으면 하는 것입니다. 타협은 대개가 절대자와 하는 타협들입니다. 그래서 그 언약은 비밀로 붙여지거나 다른 말속에 언뜻 비치거나 원목실에서 사사로이 말하거나 합니다. 자기 몸의 일부나 전체를 의학 발전을 위해 기증하겠다고 언약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 심리학적으로 언약이라는 것은 죄의식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의료진은 환자의 행동이 미성숙하며 어린아이 같고 환상에 젖어 있으며 어른으로서는 적당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환자의 소망을 묵살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간호사는 이러한 행동이 정상적이며 환자가 다음 단계를 위해 준비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④ 우울 (Depression)
회복의 가망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병을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하게 될 때, 증상이 더 뚜렷해지고 몸이 현저하게 쇠약해질 때, 환자는 더 이상 웃어넘기지 못하게 됩니다. 초연한 자세와 무감동, 분노와 격정은 머지않아 극도의 상실감으로 바뀌며 심한 우울증에 빠집니다. 이 단계에는 두 가지 종류의 우울증이 있는데, 그 하나는 반작용적인 우울증이라 부르며 이것은 과거나 현재의 손상과 관계됩니다. 환자는 부모 없이 남게 될 아이들에 관하여 또는 막중한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될 가족에 대한 걱정을 합니다. 또 다른 우울증은 그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과 물건, 그 자신과 그에게 중요했던 모든 것의 손실과 관련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예비적 우울증이며, 이 단계에서 환자는 아주 조용히 있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 이 시기에는 환자가 슬픔에 젖도록 놓아두어야 하며 그가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필요로 할 때 옆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혹은 이야기를 하며 조용히 귀담아 들어 주고 부드럽게 대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우울증에 빠질 때 환자는 별로 대화를 원하지 않으며 환자는 자기와 같이 느끼고 슬퍼하며 자기 옆에 있어 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⑤ 수용 (Acceptance)
환자가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또한 앞서 기술한 과정을 거치면서 도움을 받았다면, 그는 자기 '운명'을 두고 분노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 다음 단계에 들어갑니다. 그는 이전에 자기 심중을 거쳐간 감정들을 털어놓을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산사람과 건강한 사람에 대한 질투와 분노를 이야기할 것이고 머지않아 자기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정든 곳을 잃게 되리라고 한탄할 것이며 또 어떤 기대를 가지고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볼 것입니다. 환자는 대개 극도로 지치고 쇠약해지며 감정의 공백기를 가집니다. 수용을 행복한 감정의 단계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고통이 지나가고 몸부림이 끝나면, "머나먼 여정을 떠나기 전에 취하는 마지막 휴식"의 시간이 오는 것입니다.
▶ 임종환자가 일종의 평안과 수용의 단계로 들어감에 따라 그의 관심의 세계는 점점 좁아집니다. 그로 인해 환자는 혼자 있고 싶어하고 때로는 문병객을 달가와하지 않으며, 사람이 방문을 해도 이야기를 나눌 기분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의사 소통은 언어보다도 무언의 대화로 바뀝니다. 임종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침착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이 침묵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뜻깊은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죽어 가는 사람의 느낌을 수용할 때 환자와의 의사소통에 놀라운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버림받지 않았다는 확신에서 큰 위로를 받게 되며 동시에 자신은 사랑 받고 있으며 값있고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시기는 환자 못지 않게 가족이 도움과 이해와 격려를 필요로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실제적인 환자의 임종준비에 대해 알려 주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의 상실감을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출처 : <퀴블러 로스(E. K bler Ross, 1968)의 죽음의 5단계>
죽음과 임종에 관한 심리
Alfons Deeken, Ph.D., S.J. Sophia University, Tokyo, Japan
죽음과 임종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임종 환자들에게나 건강한 사람들에게나 공통적인 현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미국 내과 의사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죽음에 대해서 더 강한 두려움을 갖는다고 한다.(Feifel) 이 연구의 목적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갖가지 유형들을 살펴보고, 이 두려움들을 적극적으로 직면하는 몇 가지 방법들을 생각해봄으로써 우리가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감소시킬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많은 환자들은 그런 지나친 두려움으로 감정적으로 절름거림, 결과적으로 임종의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성숙하는데 방해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과도한 두려움들을 인식하고 환자들이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긍정적인 기능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긍정적인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먼저, 두려움은 위험에 대한 신호이다. 그것은 예방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한다. 만일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전혀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 위험한 방법으로 행동하거나,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단축시키기 쉽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둘째 긍정적인 기능은, 잠재적인 창의성이 이 두려움에 의해서 자극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이론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개인의 창의성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의 에너지와 활력의 기본 원천이라고까지 말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Ernest Becker는 인류가 행하고 건설하고 창조하는 모든 것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기본적으로 망각에 대한 두려움을 진정시키려고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다양한 노력들의 동기를 정직하게 돌아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넘어 지속될 어떤 것을 창조하도록 우리를 몰아대는 내적인 충동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예술적인 창작일 수도 있고 자녀를 출산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학문적인 작업이나 건축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제한된 인생의 기간을 넘어 지속하는 무엇인가를 창조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는 우리의 인생이 시간적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시간의 한정에 대한 막연한 인식은 분명히 우리 인간의 잠재적인 창의성을 계발하도록 하는 힘센 자극이나 영감으로 작용한다.
미국에서의 많은 연구들은 죽음에 대한 교육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상당히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죽음과 임종자라는 문제에 대한 교육 과정이나 비공식적인 연구를 통해서 사람은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죽음이라는 현상에 익숙하게 할 수 있고, 임종의 의미를 탐구하고 그래서 자신의 두려움이라는 대상을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사람은 결코 죽음이라는 거대한 신비를 모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부분적인 지식도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킬 것이다.
두려움과 걱정의 9가지 유형
1. 고통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자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다. 임종은 대개 고통스런 체험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임종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고통 뿐만이 아니다. 육체적인 고통 외에 두 번째, 종종 육체의 고통보다 더 강한, 고통은 정신적인 고통이다. 곧 죽어야 하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소유물들을 뒤에 남기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대단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환자들이 또한 두려워하는 세 번째 고통은 사회적인 고통이다. 이것은 종종 환자 가족의 운명 그들의 경제적 안정, 그리고 자신의 죽음 뒤의 불확실한 생활 등에 대한 걱정스러운 관심으로 표현된다. 어떤 이들에게는, 사회적인 고통은 가족을 마주보고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통이다. 젊은 아버지는 그가 더 이상 봉급을 받지 못하고 그의 가족에게 짐이 되어버렸다는 것에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고통은 영적인 고통이다. 많은 환자들은 그들이 성취한 것이 거의 없고 때 이른 죽음과 불확실한 미래를 직면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그들 삶의 무의미함을 체험하고 고통을 겪는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위의 네 가지 유형의 고통을 모두 포함한다. 환자가 이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은 이 네 가지 유형의 고통을 덜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고통의 조절에만 집중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호스피스가 접근하는 고통의 조절은 항상 “전체 고통”을 지향하는 것이다.
2.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많은 환자들에게 걱정의 가장 큰 원천은 임종의 마지막 순간에 홀로 남겨질 것이라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 초월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죽음의 어둔 밤 안으로 홀로 걸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환자가 죽음의 과정에서 혼자 남겨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최후의 순간까지 그 환자 곁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한다면, 우리는 임종 환자의 두려움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외로운 고통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의 문화와 교육은 그런 두려움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게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나약하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겉으로는 용감한 체 하면서 두려움의 고통을 밤중에 외롭게 겪어야 하는 것이다.
3. 불유쾌한 체험에 대한 두려움
많은 사람들은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그들의 자연스런 인간적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것을 보아 왔다. 그래서 그들은 임종의 과정에서 그들이 추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걱정한다.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난처한 상황이다. 특히 여성들은 종종 그들이 기초 화장도 못하고 머리 모양은 추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병실의 전체 환경은 방문자들의 눈과 코에 불쾌할 수도 있다. 흐트러진 침구들, 변기들, 임종자의 몸에 연결된 의료 기구들, 몸에서 나는 냄새 등. 오래 되고 고통스런 병은 환자의 외관을 볼품없게 할 수 있고, 극심한 통증은 환자의 입가에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 특히 일생을 바르고 품위 있는 행동과 주변 사람들에게 유쾌한 이미지를 주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사람들은 종종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난처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드러낼까 걱정한다.
4. 가족이나 사회에 짐이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가족이나 사회에 짐이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자주, 특히 나이가 지긋한 환자들에게 있다. 의료비용이 점점 더 과도해지고 있을 때 재정적인 부담이 되고 있다는 두려움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환자에게 그의 가족이 그를 짐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항상 그를 매우 가치 있는 가족 일원으로 본다는 것을 확신 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와 같은 확신은 이 유형의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환자 앞에서는 재정적인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5.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현대인은 모든 종류의 문제들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익숙해 있다. 그래서 그가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들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하지만 죽음은 조절 가능한 상황이라는 이 일반적인 모형에 맞지 않는다. 여기서 사람은 미지의 것에 직면하고 그 새로운 상황을 전혀 조절할 수 없다. 그 미지의 것, 수동적인 역할에로 던져짐을 직면하면서 걱정이 일어난다.
6. 삶의 두려움에서 나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는 밀접한 평행이 있다. 때때로 삶의 상처를 받고 때때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 기본적으로 사람의 동일한 감정이다. 또는 같은 사람이 젊은 시절에는 삶을 두려워할 수 있고 인생의 후기에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삶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이 밀접한 관계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본성을 분석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젊어서의 삶에 대한 두려움의 형태 안에서 잠재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삶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은 같은 사람이 인생의 후기에 죽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데 대한 암시이다. 이 문제를 일찍 발견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데 중요하다. (그러므로 돌보는 환자의 인생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얻는 것이 좋다.)
7. 삶의 과제를 모두 마치지 못했다는 느낌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많은 임종 환자들은 그들의 삶의 과제가 끝마쳐지지 않았다는 고통스런 느낌으로 괴로워한다. 그들은 젊어서의 꿈들과 실제의 성취들을 비교하고 그 사이의 깊은 격차를 느낀다. 삶의 과제를 마치지 못한 채 죽는다는 것, 아니면 사람으로서의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고통스런 위협이다. 환자들은 종종 그들의 과거의 성취에 대해서 지나치게 부정적이 된다. 그리고 실제 성취한 것들을 무시한 채 부정적인 면에만 집중하는 경항이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런 사람들이 전문적인 성취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람으로서의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의미한다.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성취들을 지적함으로써 그들의 과장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우며, 그들의 과거 삶에 대해서 적절히 균형 있는 시각을 갖도록 도울 수 있다. 환자에게 임종의 과정 자체가 단순히 수동적으로 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성숙의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종의 과정 자체는 하나의 도전을 제공하고 더 깊은 자기 실현의 도구가 된다. 환자가 그의 삶의 과제의 중요한 부분이 임종의 도전에 그가 응답하는 가운데 여전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는 위에서 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것이고, 그때까지 무의미한 두려움으로 소진되던 그의 고귀한 에너지를 최후의 자기 실현이라는 긍정적인 과제에 쏟을 것이다.
8. 인간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몇몇 저자들에 의하던 인간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기본이라고 한다. 자기 보존은 사람의 기본적인 본능들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죽음에 직면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모두 잃어버리는 가능성에 직면함을 의미한다. 자기 보존의 본능과 같이 자기 소멸에 대한 두려움도 자연스런 반응이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희망을 심화 시키는 것이, 죽음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데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영원한 미래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떤 임종 환자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이 된다.
9. 사후 심판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어떤 환자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기본적으로 사후 심판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사람이 죽은 후에 심판을 받아서 선한 사람을 선행에 대해 상을 받고 악한 사람은 죄에 대해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거의 보편적인 믿음이 있어왔다. 몇몇 다른 종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도 죽은 다음에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에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지옥에서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판에 대한 생각은 많은 환자들을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믿게 한다.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는 환자들을 돌볼 때는 하느님이 복수의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의 어떤 잘못도 용서해 주시고자 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죽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죽음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에게 최선의 길은 유머 감각을 기르는 것이다. 유머가 부족하고 삶의 모든 것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은 삶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하나의 원천이 된다. 건전한 해독제이며 효과적인 약은 때때로 자신의 잘못이나 바보스러움에 대해서 웃어 넘기고 따뜻한 유머 감각을 기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어원적으로 영어 단어 humor는 라틴어 “humor(pl. humores)”에서 나왔다. 중세의 의사들은 사람 몸의 “fluids”를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humores”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humores”는 사람에게 우연히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 “생명의 정수이자 활력(juice and sap of life)”, 사람에게 생명력을 주고 인간 생명을 항구히 재충전해주는 창조적인 힘과 같은 내적인 흐름이었다.
유머라는 말로 죽음 앞에서 유쾌한 농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의 기본적인 희망적 태도, 슬픔에 직면해서도 웃음의 역설을 받아들일 여지를 갖는 마음의 따뜻함을 말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 건강의 방어기제이다. 하지만 많은 가람들은 과도하게 억누르는 두려움의 짐을 지고 있다. 그들에게 유머라는 건전한 투약은 그들의 걱정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감소시킬 두려움-해소 요법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임종을 앞둔 환자를 위한 돌봄
말기 암 환자들에게 적절한 돌봄의 유형을 결정할 때 우리는 먼저 그 환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1. 교제(companionship)를 필요로 함 – 환자와 함께 있는 것으로서의 돌봄
2.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을 필요로 함 –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존중으로서의 돌봄
3. 인간적 성숙을 필요로 함 –활동적인 생활과 성장을 격려하는 것으로서의 돌봄
4. 임종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필요로 함
5. 그의 병에 대한 진실을 아는 것을 필요로 함 –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서의 돌봄
6. 존엄성을 가지고 죽는 것을 필요로 함 – 임종의 과정을 부당하게 연장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돌봄
7. 삶의 회상 요법을 필요로 함
8. 통증 조절을 필요로 함
9. 유머와 웃음을 필요로 함
10. 죽은 후의 삶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필요로 함
2.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을 필요로 함 –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존중으로서의 돌봄
3. 인간적 성숙을 필요로 함 –활동적인 생활과 성장을 격려하는 것으로서의 돌봄
4. 임종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필요로 함
5. 그의 병에 대한 진실을 아는 것을 필요로 함 –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서의 돌봄
6. 존엄성을 가지고 죽는 것을 필요로 함 – 임종의 과정을 부당하게 연장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돌봄
7. 삶의 회상 요법을 필요로 함
8. 통증 조절을 필요로 함
9. 유머와 웃음을 필요로 함
10. 죽은 후의 삶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필요로 함
1. 교제(companionship)를 필요로 함 – 환자와 함께 있는 것으로서의 돌봄
미국에서 말기 암 환자들의 가장 주된 문제는 “버려짐(abandonment)”으로 조사되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많은 임종 환자들에게 대단한 고통의 원천이 된다. 몇 가지 조사에서는 많은 의사들이 임종 환자들을 짧게 방문하는 것도 점차 드물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나타났다. 환자들의 말에 진실로 귀를 기울이는 대신 “오늘은 좋아 보이는군요?”와 같은 의례적인 몇 가지 물음만을 던지는 것이다. 많은 간호사들도 임종 환자를 피하고, 임종에 대해서 대화하고 싶어하는 환자들을 대화의 상대자로 보지 않고 단순히 신체적인 도움만을 주려는 경향이 있다.
임종 환자들은 우리들 자신의 죽음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이 두려움이 친척들과 친척, 그리고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멀어지게 한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집에서 가족들,이웃들, 친구들로 둘러싸인 따뜻함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종종 차가운 기계들과 중환자실의 장비들에 둘러싸여 죽는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점점 임종자에게서 멀어져 버리고, 임종자는 그의 신체적인 필요는 돌볼 수 있으나 정서적인 필요에는 응답할 수 없는 기술적 장치들에 맡겨져 버린다.
임종자를 인간적으로 돌본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 환자를 버리지 않고 그가 가장 필요로 하는 시간에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어느 다른 때보다도 죽음을 향한 외로운 여정을 할 때 교제(companionship)의 필요를 느낀다. 우리의 인격적인 현존을 통해서 우리는 임종 환자에게 그가 사회로부터 홀로 버림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는 끝까지 소중히 여겨지고 사랑 받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또한 토기에 그들에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버려지고 외롭게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려운 것이기는 하나, 아마도 단순히 옆에 머물어 있는 것이 우리가 임종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돌봄이라고 할 수 있다.
2.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을 필요로 함 –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존중으로서의 돌봄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가장 가치 있는 특성 중에 하나는 바로 그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하였다. 자기 결정의 능력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사람의 품위를 보존하는데 본질적이라면, 의사들과 돌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담당한 환자들의 자기 결정을 손상시킬 잠재적인 위험을 매우 중시해야 한다. 이것은 물론 복잡한 문제이고 종종 정확히 선을 긋기가 어려울 것이다. 특히 환자의 결정 능력이 감소된 경우에는 말이다.
갈등, 자기 회의, 불확실성, 그리고 의지할 곳이 없다고 하는 일반적인 느낌은 자주 모든 것을 돌보는 사람들에게는 환자와 상의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고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이 계속되는 유혹이다. 그런 방법이 시간도 절약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들이 환자들의 불평을 듣는 것이 드물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가치의 우선 순위에 대한 물음에 직면한다. 우리가 사람의 자기 결정이 가장 높은 가치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돌보는 데나 시간을 절약하는데 있어서 단지 능률이라는 것이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사실 삶의 이런 위기의 시기는 의료 분야에서 환자가 자유로움을 더 깊이 누리도록 격려할 더 큰 노력을 요청하는 것으로 보인다.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환자가 여전히 자기 결정의 능력이 있다고 적극적으로 격려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한다. 환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행동을 빼앗는 곳과 같은 과다 돌봄은 그를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만든다. 예를 들면, 간호사가 단추 채우는 것을 떨리는 손이지만 환자 스스로 하도록 기다리기 보다 직접 해줄 때 시간을 절약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태도는 환자의 자신감을 감소시키고 점차로 그에게서 자기 관리의 용기와 동기를 빼앗는 곳이 될 것이다.
3. 인간적 성숙을 필요로 함 – 활동적인 생활과 성장을 격려하는 것으로서의 돌봄
인간은 변화되고 성장하는 계속적인 과정 안에서 역동적인 존재이다. 이것은 사람이 활동적인 시기에는 공통적이다. 하지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는 과연 인간 성숙이라는 곳에 충분한 중요성을 두고 있는가? 너무도 자주 우리는 인간 삶의 마지막 순간을 오직 퇴락으로 가는 일방 통행이라고 보는 것 같다. 환자가 죽게 될 것을 예상하는 바로 그 때 그는 그가 받을 수 있는 모든 격려를 필요로 한다. 그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진정 인간적인 때가 되게 하고, 인간 성숙을 위한 시기가 되게 하고 대인 관계를 지속할 시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그가 죽음을 기다리는 피할 수 없는 수동적인 태도와 마지막 순간까지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충실한 태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발견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4. 임종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의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필요로 함
우리는 대개 다음과 같은 질문에 관심을 갖는다: 공동체가 임종 환자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렇게 묻고자 한다: 임종 환자가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람에 대해 가할 수 있는 가장 큰 모욕 중의 하나는 그가 쓸모 없고 하찮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임종 환자는 결코 쓸모 없는 삶에 대해서 중요한 메시지와 도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공동체에 영원성이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직면하도록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는 그 자신의 예를 통해서 사람들을 철학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임종이라는 드라마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반복해서 의미 있고 도전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할 수 있다.
임종 환자들은 그들이 사회에 어떻게는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로 인정 받아야 한다. 환자가 그의 장기를 기증함으로써 다른 환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환자의 심리 상태를 세밀히 아는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환자들은 장기 기증의 제의가 마치 그가 어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환자들에게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커다란 격려와 기쁨을 주는 것이다.
말기 환자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움 중의 하나는 그들이 결코 쓸모 없지 않고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5. 그의 병에 대한 진실을 아는 것을 필요로 함 –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서의 돌봄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많은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병에 대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환자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의사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길들이지 못한다면, 이 두려움이 환자의 온전한 진실을 통교할 능력을 마비시킬 것이다.
첫째, 진실을 아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본질적인 가치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간의 기본 권리이다.
그러므로 의사가 환자에게 그의 상태를 말할 의무는 환자의 이런 권리와 일치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환자의 건강에 오히려 해롭거나 환자가 정서적으로 진실을 받아들일 만큼 강하지 못한 경우에는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의사가 환자에게 그의 상태를 말할 의무는 환자의 이런 권리와 일치한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환자의 건강에 오히려 해롭거나 환자가 정서적으로 진실을 받아들일 만큼 강하지 못한 경우에는 다를 수 있다.
둘째, 진실을 말하는 것은 환자와 의사 사이에 진실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하다.
의사가 환자에게 건강 상태에 대해 거짓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인상은 의사에 대한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
의사가 환자에게 건강 상태에 대해 거짓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인상은 의사에 대한 신뢰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
셋째, 의심, 의혹, 불신, 그리고 의사와 자신의 상태를 상세히 논의할 수 없다는 느낌이 계속되는 것은 환자에게 심리적으로 해롭다.
그리고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병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많은 암 환자들이 의사, 간호사들과 그들의 두려움과 통증에 대해서 논의하기를 아주 필요로 하지만 솔직한 대화가 결여되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이것은 정서적인 면에서 커다란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병과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많은 암 환자들이 의사, 간호사들과 그들의 두려움과 통증에 대해서 논의하기를 아주 필요로 하지만 솔직한 대화가 결여되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이것은 정서적인 면에서 커다란 고통이 될 수 있다.
넷째, 환자들은 그들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권리가 있다.
그러면 그들 삶의 마지막 시간은 더욱 소중한 것이 된다. 그들은 그들의 일거리를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 그리고 남은 시간동안 그들이 하고 싶은 것에 새로운 우선 순위를 둘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삶은 더욱 강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이고, 아름다움을 더 많이 깨닫는 시간이며, 오랜 원한을 용서하고 손상된 인간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인 것이다. 또한 뒤에 남기고자 하는 것을 말하거나 글로 쓰고, 우정을 소중히 간직하고, 남은 삶의 매 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는 시간이다. 끝으로 죽은 다음의 영원한 삶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시간은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며 천국에서 누릴 것으로 희망하는 영원한 행복을 여기서 미리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 삶의 마지막 시간은 더욱 소중한 것이 된다. 그들은 그들의 일거리를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다. 그리고 남은 시간동안 그들이 하고 싶은 것에 새로운 우선 순위를 둘 수도 있다. 그럼으로써 삶은 더욱 강한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이고, 아름다움을 더 많이 깨닫는 시간이며, 오랜 원한을 용서하고 손상된 인간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인 것이다. 또한 뒤에 남기고자 하는 것을 말하거나 글로 쓰고, 우정을 소중히 간직하고, 남은 삶의 매 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는 시간이다. 끝으로 죽은 다음의 영원한 삶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시간은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며 천국에서 누릴 것으로 희망하는 영원한 행복을 여기서 미리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6. 존엄성을 가지고 죽는 것을 필요로 함 – 임종의 과정을 부당하게 연장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돌봄
7. 삶의 회상 요법을 필요로 함
많은 환자들은 아픈 기억으로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기억을 치유하는 것은 말기 돌봄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돌보는 사람은 이해와 화해를 도움으로써 찢겨진 가족의 화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변화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오랜 문제, 오랜 상처, 풀리지 않은 갈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다.
자기 반성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어떤 환자들은 자신의 현재나 과거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또 환자가 지나치게 자기 비판적이거나 과거 삶에 대해 부정적일 수도 있다. 이 때 숙련된 사람이 회상 요법을 통해서 과거 삶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도록 하고, 삶의 다양한 시기들을 하나의 커다란 의미로 종합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인간적인 통합과 전체성을 이루어내도록 도울 수 있다.
임종 환자의 회상을 경청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들뿐만 아니라 늘 유쾌한 작업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우리가 환자의 정서적인 문제를 해소하고 화해화 마음의 평온을 찾도록 돕는다면, 그것은 환자가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돌봄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평화롭게 죽기 위해서는 환자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평화로워야 하는 것이다.
삶의 회상 요법의 여덟 가지 기능과 목표
① 자기 존중을 유지하고 증대시킴
② 사람의 자기 이해를 심화하고 정체성과 의미에 대한 감각을 재확인하도록 도움
③ 창의성을 자극함
④ 과거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를 추구함
⑤ 다양한 상실에 직면해서 위로를 줌
⑥ 자신의 삶을 조절하는 감각을 증대시킴
⑦ 자신의 과거 삶을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대화를 촉진함
⑧ 환자가 죽음을 더욱 평온하게 직면하도록 도움
8. 통증 조절을 필요로 함
9. 유머와 웃음을 필요로 함
유머와 웃음은 아래 문제들에 대해서 중요한 답이 될 수 있다.
첫째, 죽음에 대한 두려움
둘째, 스트레스와 긴장.
오랜 시간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긴장은 이미 약해진 환자를 더 쇠약하게 할 수 있다. 여기서 유머와 웃음과 농담은 긴장 완화의 기능을 수행한다.
오랜 시간 계속되는 스트레스와 긴장은 이미 약해진 환자를 더 쇠약하게 할 수 있다. 여기서 유머와 웃음과 농담은 긴장 완화의 기능을 수행한다.
셋째, 공격성, 분노, 그리고 적개심.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적개심, 분노, 공격성의 감정은 적잖이 일어난다. 환자가 유머와 웃음의 감각을 기르도록 격려하는 것은 적개심을 줄이는데 중요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적개심, 분노, 공격성의 감정은 적잖이 일어난다. 환자가 유머와 웃음의 감각을 기르도록 격려하는 것은 적개심을 줄이는데 중요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넷째, 수동적이 되려는 경향.
유머와 웃음은 활동성과 인간 성숙에 자극을 준다.
유머와 웃음은 활동성과 인간 성숙에 자극을 준다.
다섯째, 임종 환자들의 고립과 고독.
유머와 웃음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힘이 있다. 함께 웃는 것은 연대와 공동체의 느낌을 일으킨다.
유머와 웃음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힘이 있다. 함께 웃는 것은 연대와 공동체의 느낌을 일으킨다.
여섯째. 임종 환자를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피로(“burn-out”).
유머와 웃음은 돌보는 사람들에게 예방약과도 같다.
유머와 웃음은 돌보는 사람들에게 예방약과도 같다.
10. 죽은 후의 삶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필요로 함
임종 환자가 그의 죽음을 모든 것의 종말로 보느냐, 아니면 영원한 행복으로 가는 관문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임종에로 들어가는 환자의 기본 태도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많은 환자들에게 죽은 후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은 매우 큰 지지가 되고, 마지막 순간의 용기와 기쁨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물론 우리는 말기 환자들을 돌볼 때 환자에게 우리의 개인적인 철학이나 신앙의 내용을 주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각 개별 환자들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믿음에 따라 최소한의 지침의 가능성마저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부패정치인과 암환자의 공통점
'범털'과 '암환자'가 닮은 점
지난 문민정부 시절 이른바 정치적 실세로 거론되던 인사가 비리혐의로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면회를 다녀온 한 인사로 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는 당시 시대를 호령하던 '실패한 실세'뿐만 아니라 다른 거물급 정치인들과도 개인적 연분이 있어 구치소를 이따금식 방문하곤 했다고 했다. 그가 십여 차례 방문하면서 느낀 점은 이른바 '범털'로 불리우는 거물급 정치인들이 부패와 비리혐의로 구속 수감될 때의 정신적(심리적) 상태는 말기 암환자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다시 말해, 통상 임종을 앞두고 있는 암환자들은 자신이 암이라는 진단을 전해 듣는 순간 '아니다, 나는 아니다(Not me)'라는 극도의 부정의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의사(검사 또는 판사)가 내리는 의학적인 진단(구속영장 내용)을 결코 수긍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검찰 조사를 받고 초췌해진 모습으로 검찰청사 앞에 모인 수많은 기자들을 두고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강변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두번째는, 이러한 부정의 단계를 지나 '하필이면 왜 나야(Why me?)'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점차 극도의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 부정하게 살아 온 사람들도 많은데 왜 하필 재수없게 자신만 가지고 그러냐는 저주의 목소리가 배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분노의 대상에는 자신 뿐만 아니라 친지, 동료, 심지어 신도 여기에 포함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주변 인사들이 면회를 찾아가기가 매우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그래 인정한다. 하지만...'이라는 이른바 타협의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대개 심적으로 불가피한 사실을 가식적으로 착실한 행동을 보이거나 헌신적인 맹세를 하기도 하는데 이 때가 종교에 귀의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자신이 찾았던 무신론자 '범털'중에서도 몇 사람은 그 때 종교에 귀의하여 출감후 지금까지도 열심히 사회봉사를 하는 등 바람직한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네번째는 우울의 단계이다. '그래 내 차례다'라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더 이상 부정하지 못하게되며, 이 시기에 환자(수감자)는 극도의 쇠약감과 상실감을 가지게돼 심한 우울증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녹내장이나 심장병을 호소하는 시기가 대개 여기에 해당된다고 보면 틀림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수용 또는 체념의 단계이다. '이제와서 누구를 탓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는 태도이다.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저주했던 사람들도 점차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자신의 운명에 대해 더 분노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 감정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어 현명한 '범털'들은 교도소내에서 체력단련 등 건강을 다지기에도 열심이라는 것이다.
최근 불어 닥치는 '정치개혁 광풍'의 영향으로 과거 정권 또는 현 정권에서 실세로 불리우던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지역구 의원 정수(227명)의 10%가 넘는 인사들이 현재 법의 심판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를 두고 시중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구치소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해도 되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이 정치과잉의 시대에서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자칫 정치 허무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수도 있다.
막스 웨버는 정치인의 가장 바람직한 세가지 자질로서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을 들었다. 그리고 정치에의 헌신은 그것이 경솔한 지적놀음이 아니고 진지한 인간활동이라고 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총선을 앞두고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행위들에 대해 말 없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대다수 시민들의 침묵의 동의와 연대 그리고 분노에 정치권 모두가 뼈를 깎는 철저한 각성으로 대답하지 않는 한 한국 정치의 미래는 더할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4.15 총선이 더 이상 정치부패에 연루된 '범털'들을 생산하지 않는 역사적인 선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병철 기자
업코리아 2004-01-30 13:13:00
Source : http://kdaq.empas.com/knowhow/knowhow_view.html?ps=src&num=14357
사망에 관하여 알아야 할 지식
말기 병세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떠한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가?
사랑하는 가족을 질병으로 잃는다는 사실에 순응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죽어가는 사람은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행복과 안락과 즐거움을 주었던 모든 사람과 사물을 잃는다는 생각에도 순응해야만 한다. [죽음과 죽는다는것에 관하여]라는 저서에서 엘리자베스 케블러스는 누구나 겪는 절박한 죽음에 대한 이러한 순응은 5단계의 독창적인 과정으로 나뉘었다. 즉, 다가오는 죽음을 거부하는 1 단계, 운명, 신("하필이면 왜 내가?"), 의사들, 또는 비보를 전해준 기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2단계, 현실과 타협하는 ("내 아들이 졸업할 때까지만 살 수 있다면...") 3단계, 사망의 불가피성을 마음속 깊이 깨달으면서 우울증에 빠지는 4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을 수용하는 5단계가 그것이다.
사망 경험에 관한 생존자들의 증언
최근 몇 년 사이에 인공호흡에 대한 의료기술이 크게 발달하면서 여러 가지로 '사망체험'을 한 환자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이를테면 전에는 심장박동 정지로 죽었을 사람들도 오늘날에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정신병학자의 레이몬드 무디가 심리학자 케네스 링이 실시한 102건의 사망체험에 관한 연구조사가 자신의 조사 결과 중 일부를 확증 시켜 주었다고 말했다.
* 죽음의 감지:
처음에는 자신들이 사망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개닫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떠난 육체의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당황하여 "어떻게 해서 내가 저 밑에 있는 내 육신을 내려다 보면서 여기 이렇게 떠 있을수 있을까?"하고 의아해 한다.
* 평안과 무통:
모든 병이나 사고는 극도의 통증을 일으키는 일이 빈번한데 사망체험에 들어가면 통증이 갑자기 사라진다. 링의 연구 조사결과는 사망체험을 한 사람의 60%가 평안과 통증소멸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 체외유리(遊離)경험:
사람들은 가끔 몸이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대부분 자기들이 단순히 의식의 핵심이 아니라 어떤 육체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링의 말에 의하면 조사 대상의 37%가 체외 유리의 경험을 했다고 한다.
* 터널 경험:
이런 현상은 일반적으로 체외 유리 경험 후에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터널의 입구 또는 터널 전체가 열리면서 암흑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환상을 경험했다. 어떤 사람들은 '획' 하는 소리를 듣거나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전기적 진동도 느낀다. 강렬한 빛을 향해 앞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은 거의 모든 터널 경험에 공통된 현상이다.
* 빛의 사람들:
사람들은 일단 터널을 벗어나면 사랑으로 가득체우는 강렬한 빛을 내는 존재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광명'또는 '사랑'"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항상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사망체험자들은 죽은 친구들과 친척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링에 의하면 그러한 빛을 본 사람은 16%에 달한다. 빛의 존재: 몇몇 빛의 존재들과 만난 후에는 보통 지고한 빛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 이 성스러운 존재를 무엇이라 부르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히 그것과 함께 머물고 싶어한다.
* 인생 회고:
빛의 존재는 가끔 사망체험자에게 인생을 회고하도록 만드는데 거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제 삼자의 시각에서 인생을 재조명시켜준다. 그는 하나하나의 행동을 볼 뿐만 아니라 자기 행동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까지 보게 된다. 빛의 존재는 인생사를 바른 눈으로 볼수 있도록 도와준다.
* 승천:
하늘에 올라갔다 왔다고 보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와 같은 승천을 통해 그들은 우주비행사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 내키지 않는 귀환:
이러한 환경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이승으로 데려왔다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 죽음의 감지:
처음에는 자신들이 사망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개닫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떠난 육체의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당황하여 "어떻게 해서 내가 저 밑에 있는 내 육신을 내려다 보면서 여기 이렇게 떠 있을수 있을까?"하고 의아해 한다.
* 평안과 무통:
모든 병이나 사고는 극도의 통증을 일으키는 일이 빈번한데 사망체험에 들어가면 통증이 갑자기 사라진다. 링의 연구 조사결과는 사망체험을 한 사람의 60%가 평안과 통증소멸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 체외유리(遊離)경험:
사람들은 가끔 몸이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은 대부분 자기들이 단순히 의식의 핵심이 아니라 어떤 육체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링의 말에 의하면 조사 대상의 37%가 체외 유리의 경험을 했다고 한다.
* 터널 경험:
이런 현상은 일반적으로 체외 유리 경험 후에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은 터널의 입구 또는 터널 전체가 열리면서 암흑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환상을 경험했다. 어떤 사람들은 '획' 하는 소리를 듣거나 윙윙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전기적 진동도 느낀다. 강렬한 빛을 향해 앞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은 거의 모든 터널 경험에 공통된 현상이다.
* 빛의 사람들:
사람들은 일단 터널을 벗어나면 사랑으로 가득체우는 강렬한 빛을 내는 존재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광명'또는 '사랑'"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항상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사망체험자들은 죽은 친구들과 친척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링에 의하면 그러한 빛을 본 사람은 16%에 달한다. 빛의 존재: 몇몇 빛의 존재들과 만난 후에는 보통 지고한 빛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 이 성스러운 존재를 무엇이라 부르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히 그것과 함께 머물고 싶어한다.
* 인생 회고:
빛의 존재는 가끔 사망체험자에게 인생을 회고하도록 만드는데 거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제 삼자의 시각에서 인생을 재조명시켜준다. 그는 하나하나의 행동을 볼 뿐만 아니라 자기 행동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까지 보게 된다. 빛의 존재는 인생사를 바른 눈으로 볼수 있도록 도와준다.
* 승천:
하늘에 올라갔다 왔다고 보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와 같은 승천을 통해 그들은 우주비행사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 내키지 않는 귀환:
이러한 환경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이승으로 데려왔다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정보공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에 나타난 개성화 과정의 상징 (0) | 2010.11.22 |
---|---|
신생아 반사 (0) | 2010.11.22 |
중독의 원인과 유형들 (0) | 2010.11.22 |
학령기 아동의 건강한 성 (0) | 2010.11.22 |
성역할의 개념 (0) | 2010.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