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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 환아와 미술치료

소아암 환아와 미술치료 - '소박한 동행' 전의 도록 글.
                                                     미술치료사 안 정 희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에게 찾아온‘암’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은 한 순간
에 아동들과 그 가족들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며 들어앉아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혼란 속에 빠져들게 한다. 암의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은 소아 암 아이들을 매우 두렵고 외롭게 할 뿐 아니라 아직 성장과정 중에 있는 아이들의 신체적 ․ 심리적 ․ 사회적 ․ 영적인 발달을 지연시키거나 퇴행시키는 등 이들의 성장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치료가 종결된다 할지라도 완치 판정을 받을 때 까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소아 암 아이들과 가족들은 지속적인 질병관리와 재발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질병치료과정은 소아 암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유발시켜 신체적인 고통과 더불어 정서 ․ 사회적으로도 어려움에 처하게 한다.

한국백혈병 어린이 재단에서 제공되는 미술치료 프로그램은 위에서 언급한 소아 암 아이들의 정서 ․ 사회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하여 2003년부터 개별미술치료를, 2005년부터는 주 1회 병원 에 방문하여 실시하는 집단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실행시켜오고 있다. 집단 미술치료시간에는 소아 암 아이들은 주로 의료적인 치료과정 중에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풀어놓기도 하며, 병원생활 중에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하여 참여하기도 한다. 이들은 그동안 표현할 수 없었던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거나, 질병으로 인해 생기는 긴장감을 해소하면서 마음을 치유하는 기회를 얻는 것으로 보여 진다. 개별 미술치료시간에는 미술활동을 더 많이 하게 됨으로서 집단치료시간보다는 소아 암으로 인해 발생되는 정서 ․ 사회적 이슈들을 보다 더 많이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집단미술치료과정에서 보다 더 구체적인 미술치료 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미술치료는 대상에 따라 접근방법과 치료의 목표가 달라질 수 있다. 본 치료사는 미술치료프로그램을 통해 소아 암 아이들과 만나오면서 소아 암 아이들 개개인의 치료경과가 다르고 질병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상태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소아 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치료에는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중 첫째는 소아 암 아이들의 신체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다. 이는 질병으로 인해 신체장애판정을 받기도 하고 화학적 치료의 부작용으로 신체의 일부분이 일시적으로 마비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에 미술치료사는 이들의 신체기능을 재빨리 파악하여 적합한 미술치료기법을 제안하여 환아가 미술활동을 원활하게 수행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야한다. 둘째는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다. 암 이라는 질병이 갖는‘불확실성’이란 특성은 소아 암 아이들에게 불안감을 갖게 하며 정서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한다. 또한 연령에 따라 질병을 받아들이는 심리적인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각 연령에 따른 주된 정서적 이슈들을 파악하여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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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 전기 아이들의 경우 정서적 발달의 공백을 보이기도 하고 학령기의 아이들은 대인기피증으로 등교거부를 하기도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경우에는 통제력의 상실로 자신이 무가치다고 느끼는 등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이때에 미술치료는 아이들의 미술표현활동을 격려하여 그들의 불안과 우울한 기분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셋째는 소아 암 아이들이 느끼는 고민에 귀 기울이는 상담심리적인 접근이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단절된 학교생활과 친구관계, 다시 학교에 복귀하더라도 학업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문제와 성인이 되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많은 편이다. 또한 항암치료로 인해 변화된 외모와 면역력 약화는 아이들을 크게 위축시켜 타인의 시선을 불편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어 공개적인 장소에 나가는 것을 꺼리게 하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제한된 음식섭취에 대한 괴로움 또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인데 실제로 먹고 싶은 음식을 미술재료로 만들어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이들은 미술치료시간에 이러한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지지받으며 다른 또래환아들의 공감은 얻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는 미술창작과정 자체가 치료의 과정일 수 있다는 미술치료의 기본적인 주장을 바탕으로 한 접근이다. 미술활동은 기본적으로 소아 암 아이들을 능동적이게 하는데 이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통제성을 회복시키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여 스스로 존재감을 확인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미술활동 자체에 몰입하는 아이들일수록 미술활동이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에 아주 좋다고 하기도 하고, 미술활동 중에 자신이 아픈 환자라는 것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미술창작활동에의 몰입이 통증과 증상을 경감시킨다는 효과성에 대한 입증으로 실제로 미술치료시간에 미술활동을 하면서도 의사나 간호사의 의료적인 처치를 계속 받으면서도 미술활동을 계속하는 환아들의 모습에서 이들에게 미술치료활동 얼마나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째는 영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다.

소아 암 아이들의 그림에 죽음이나 완치에 대한 두려움, 천사와 악마의 싸움, 꿈속의 유령들 등이 상징과 질병의 구체적인 표현이 많이 나타나는 등 환아의 영적인 부분이 많이 표현되어지는 것으로 관찰되어진다. 완치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간혹 소아 암의 특징상 질병치료 경과가 갑자기 안 좋아져 짧은 삶의 마감 직전에 처한 환아들이 있다. 특히 이들은 미술치료시간에 보다 많은 가치를 두고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때에는 치료사가 한 인간으로서도 무척 견디기 힘든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치료사의 감정을 숨기고 그들의 마지막 한 순간순간에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여야한다.


본 미술치료사는 미술치료 시간을 통해 소아 암 아이들을 만나오면서 궁극적으로 그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질병의 완치이지만 이와 더불어 그들 각자가 소속되어져야할 그들의 또래집단에 정상적으로 복귀하는 것과 한 인간으로 존중 받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래 집단으로의 복귀를 위해서는 환아가 스스로 여러 정서적인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돕기 위한 미술치료 프로그램의 제공은 매우 적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건강이란 단지 질병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과 더불어 정신적인 건강, 사회적인 안녕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세계보건기구의 건강에 대한 정의는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외면하고 사는 것에 대해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UN의 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의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에 대한 언급과 우리 소아 암 아이들이 언젠가는 완치가 되어 우리 사회를 이루는 든든한 구성원으로 성장될 것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소아 암 아이들을 위한 정서적 지원 프로그램의 제공이 사회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맥락에서 환아의 질병치료를 위한 치료비지원과 더불어 정서적 지지를 위한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의 실제적인 기획과 실행, 그리고 우정사업본부의 미술치료프로그램에 대한 후원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도 우리 소아 암 아이들은 모두 한 인간으로서 소중한 존재라는 것과 언젠가는 완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미술치료사로서도 매우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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