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관계

우리는 소망해온 아이를 원한다


우리는 소망해온 아이를 원한다

□ 들어가기 전에..

-“영국에서 3,000개의 냉동 배아가 폐기되다.” “이탈리아의 생식의학자가 60세의 여성에게 아이를 갖도록 도와주다”, “미국 여성이 자신의 손녀와 함께 임신하다”... 처음에는 맹렬한 토론의 대상이 되었던 생식의학의 새로운 방법들이 그 동안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다.

 

-의학기술 분야의 급속한 발전의 동시대이자 증인으로서 우리는 부모의 신분을 둘러싼 입장과 희망과 소망이 얼마나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지는 곧바로 확실히 체험할 수 있다.

인체유전학자인 얀 무르켄(Jan Murken)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제 산전 진단법을 세상에서 몰아낼 수 는 없다. 그러나 출산을 무리하게 요구할 수 없게 하는 사는 사실상 누구나 수긍하게 되는 위협적인 질병부터, 현실적으로 늘 있어왔던 태아 성 감별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산전 진단법이라는 이 연속체는 우리에게 경계선 긋기를 어렵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또한 뮌헨의 그로스하더른 병원의 부인과 과장인 헤르만 헤프는 “이러한 의학적인(산전 진단법의)발전과 더불어 계속적인 욕망이 일깨워지고 심화된다.

건강한 아이에 대한 요구의 증가는 마지막에는 일종의 “장애 없는 아이에 대한 의무"로 발전되는 데까지 나아갈지도 모른다”

 

산전 진단법과 관련해 그들의 요구들(부모들)은 이기주의와 부모의 무절제의 산물이며 그들의 개인적인 애착, 강박관념, 노이로제의 표현이다.

하지만 또 다르게 해석한다면 새로운 부모의 의무가 “아이를 위한 최적의 출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 현대의 부모신분: 최적의 후원이라는 법칙

부모의 자녀교육의 본래 의미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부모들은 도덕적인 지도와 그리고 신에 대한 경외와 순종과 노동을 가르치는 데 애써야 했다.

나머지 돌보기는 어린아이의 기초적인 욕구, 즉 영양과 의복에 관련되었다. 나아가 추락과 익사와 같은 위험에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감독과 종종 회초리의 형태로 나타나는 많은 육체적 훈계가 있었다.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아동기의 발견’이 시작되고 이와 함께 부모의 역사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이러한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은 교육에 관한 권한이다.

때문에 현대에는 아이의 지식, 언어, 교육 이 모든 것이 이제 부모의 노동을 증가시키는 부모의 의무가 된다. 소득의 증가로 인해 전에는 소수층에만 주어졌던 후원의 가능성이 이제는 폭넓은 집단에서 성취 가능한 것이 된다.

→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가정 살림의 기술화와 일회용 기저귀나 아기용 식품과 같은 규격 생산품의 덕택으로 아이의 육체적인 돌보기가 여러 모로 더 단순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아동기의 발견과 함께 점점 더 새로운 주제와 과제들이 발견되었고, 이것들은 부모의 증가로 바뀐다.

즉, 현대의 부모는 아이에게 “최적의 출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산전 진단법과 유전자 진단법의 상품들

산전 진단법 말고도 의학, 생물학 그리고 유전학의 발전은 급속 냉동 기술과 정자 은행(덕분에 인공수정을 완벽하게 시항하게 됨), 태아 전달을 포함한 시험관 수정, 마지막으로는 유전자 암호의 해독과 거기에 기초한 산전 진단의 새로운 기술들을 언급할 수 있다.

원래 목적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아이가 없는 부부로 하여금 소망하는 아이를 갖게 도와준다는 것. 하지만 아직까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목적이 숨어있다.

의학기술이 제공하는 새로운 상품들이 아이를 위한 출발 기회의 최적화라는 현대적 사명을 실현시키는 데 투입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출생 이후뿐만 아니라 그 이전 단계에 이미 생물학적 연출 목록에 손을 댐으로써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새로운 책임

점점 더 확실한 피임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책임 있는 계획의 관념이 확산되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제대로 먹이고 양육할 수 있을 만큼의 아이들만을 얻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 동안 생식의학과 산전 진단법의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형성되면서 책임의 개념도 발전했고 새로운 음조를 띠게 된다.

예들들어 “아이가 심각한 육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를 조기에 발견하여 임신중절을 가능케 함으로써” 이행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결정들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전통적 개념과 상충되며, 우생학의 어두운 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은 여론적으로 산전 진단법과 유전자 진단법이 제공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은 여성들은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이기적이거나 무지하거나, 무책임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간주된다.

 

 

새로운 죄

-책임을 떠맡지 않는 사람은 무책임 하다고 간주되며, 책임의 불이행은 죄로 인정된다.

-오늘날 아이에 대한 배려란, 만약 유전학전 이상이 확인된다면 차라리 애초에 그 아이를 이 세상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결함이 있는’ 유전자의 문제를 안고 시작하는 삶보다는 차라리 삶을 살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인가? 요컨대,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임신중절을 한다는 것인가?

-산전 진단법에 관한 경험에 기초한 통계가 존재한다. 연령 면에서 위험하게 보이는 여성들 중 족히 반수는 몇 년 전에 벌써 산전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최근의 대략적 평가에 따르면 산전 진단의 이용은 그 후 현저하게 증가했다.

 

다른 나라들, 다른 가치들

알다시피 산전 진단법은 아이의 성을 조기에 알아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원치 않는 성을 지닌 아이를 ‘회피하기’위해서도 이용된다. 바로 인도, 중국, 한국과 같은 나라의 경우이다.

여기서는 겸사 결과가 영아일 때 대게 임신중절이 시행된다. 우리에게 그러한 태도는 야만적이며 기본적인 금기의 경계를 훼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입장과 관점을 바꾸어, 해당 나라의 가치 척도와 생활 조건을 기본 토대로 받아들인다면, 다름과 같이 논증할수도 있을 것이다. 즉,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본적인 책임 의식의 결여가 아니라 그 반대로 부모의 의식적 책임의 표현이라고 말이다.

- DNA분자 구조에 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 학자 제임스 왓슨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표명했다.

“나는 산전 진단법이 단지 ‘건강하지 않은’ 자녀들만 막아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자의적인 한계이다. 무엇이 건강하지 않은 것인가? 독서 장애인가? 스웨덴 왕은 독서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만약 그가 미래 세대에서 이병을 퇴치할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해할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생락) 혹은 아들을 일곱 명 낳은 한 여성이 산전 진단법으로 여덟 번째 아이가 딸이 되리라는 것을 보증 받는다면 그것은 이해할 만한 조치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결정들이다. 각자 결정을 자유로이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독일에서는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울 뿐 아니라 비난할 만한 것으로까지 보이는 많은 것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아주 다르게 보이고 실행된다는 것, 즉 그곳에서는(인도,중국,한국을 비롯) 그것들이 정상적이고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심지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것으로 통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계속 볼 수 있다.

 

3. 생식의학의 약속들

생활 방식의 다양화와 함께 다른 이유에서의 의학의 도움으로 아이에 대한 소망을 실현시키려고 열망하는 새로운 집단들도 점점 더 늘어간다. 가령 처음에는 불임 수술을 했다가 나중에(예를들어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서) 이 결정을 후회하는 여성과 남성들의 경우나 이미 폐경을 겪은 여성이 난자를 제공받아 어머니가 되기를 희망하는 경우이다.

혹은 부모가 되되고자 애쓰는 동성애자의 경우나 마지막으로 파트너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독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기술의 도움을 받은 생식’ - 이 생식의학은 선택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종종 심지어는 그 선택을 꼭 해야만 하는 것으로 만든다.

 

소망상과 선택

여기에 해당하는 한 본보기는 아이에 대한 소망이 정자제공자, 난자 제공자, 대리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경우들이다.

고객은(정자나 난자를 원하는 사람) 단지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이왕 선택을 한다면, ‘더 나은’ 선택은 왜 안 되겠는가! 다양한 품목들 중에서 선택해야 할 때 누가 의식적으로 마음에 덜 드는 것을 고르겠는가? 사정은 여기서도 비슷하다. 어쨌든 선택이 행해져야 한다면, 유전학적 룰렛을 특정한 특성의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자신의 소망상에 맞춰 선택을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에 따라 상당수의 ‘주문자들’은 지능에, 어떤 사람들은 건강에, 또 다른 사람들은 푸른 눈이나 스포츠 적 재능에 희망을 건다.

-또한 피부색의 선택을 위해 시험관 수정이 이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한 병원에서 흑인 여성이 백인 여성의 난세포를 이식받았다. 이것은 분명 미래에 아이가 살면서 더 많은 성공의 기회를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

- 아이에 대한 소망이 아무리 간절하고 열렬하다고 하더라도, 여기서는 분명 아이가 어떤 결함을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이 훨씬 더 열렬하고 강한 것 같다. 아이만 얻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 한 ‘결함이 없는’ 아이여야 한다.

 

제품에 대한 손해배상 의무

만약 태어난 아이가 부모의 소망과 일치하지 않거나, 장애나 만성 질병을 보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경우(미국의 법률에 따르면) 법적인 싸움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어느 부부는 딸의 불치의 유전병을 앓는다는 이유로 정자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아이는 한 남성의 시험관 정자로 태어났는데, 물론 이 남성은 그의 고모 중 한 명이 신장병을 앓았다는 사실을 미리 정자은행 회사에 알렸던 것이다.

후에 드러났듯이 실제로 그의 친척 중 몇 명이 다낭종 신장병을 앓았거나 그 때문에 이미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그 소송은 이제 그 정자은행 회사가 어느 정도까지 제품에 대한 배상 책임을 질 것인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최적화 부수적 결과들

-만약 우리가 우리 아이들의 생물학적 체질을 가능한 한 완벽하게 조직하고 설계하려고 시도한다면 이것은 과연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그 아이들이 우리의 소망상과 다르게 성장할 때, 즉 그들이 최적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최적의 성과를 가져오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 건강과 질병과 장애에 대한 취급이 점점 더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조직될 때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허약성과 이탈과 이상 현상의 ‘회피’가 최선의 행동 원칙이 될 때 연대성의 법칙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가능한 한 결함이 없는 사회는 결국에 차라리 연대성과는 멀리 떨어진 사회가 되는 것인가?

- 자녀의 ‘유전학적 최적화’가 어느 정도까지 관철될지는 그것의 부수적 결과와 위험을 둘러싼 이러한 공적 대화의 결과에 달려있다.

 

4. 어떤 미래가 올까?

“산전 검사 방법들이 개발되기 전에는 (어떤 질병의 징후가 존재하지 않는 한) 당연히 태아가 건강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산전 검사 방법의 대두와 함께 이러한 기본 가정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지금은 태아의 건강이나 정상 상태 여부가 우선 증명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기술적으로 가능하거나 장차 가능하게 만들려는 추세가 어느 날 무제한적으로 실행될지 혹은 머지않은 미래에 여기에 제한이 가해지게 될지, 오늘날 아무도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징후들이 말해주는 것은, 기술적 개입 가능성이 합쳐져 하나의 인위적 조정 장치가 열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정 장치는 “부모 신분의 구상을 변화시키며, 이제 막 생겨나는 생명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기술적 가능성에 맞추어 확대 된다” 만약 이 예칙이 옳다고 가정하면, 그런 경우 미래의 부모는 아주 새로운 의문과 행동의 부담과 결정의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가족관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신분석적 가족치료  (0) 2011.10.22
자녀의 대화기법  (0) 2011.10.20
여성학이란 무엇인가  (0) 2011.10.12
가족, 허물기와 다시 쌓기  (0) 2011.10.12
가족발달이론  (0) 2011.10.12